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沙平驛에서_곽재구
    寶物倉庫 2009. 2. 6. 00:12

    절친과 전라선의 후미진 작은 역_사평역

    20년 지기와 사평은 나에게 하나의 관계를 더 하여 주었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외우겠다며 맘 먹었지만 게으른탓에 시집을 펼칠 때 마다 읽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연락을 자주 주고 받지는 않지만 문자만으로도 맘이 통하는 친구다. 건축인의 길을 걷고 있으며 얼마전 대치동에 자기만의 공간을 마련하였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난로의 온기가 전해지는 공간으로 펼쳐나가기를~!

    나지막히 소리내에 읽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아스란한 驛舍의 내부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간다. 삶의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불안한 시절에 과거를 추억삼아 사나워진 머릿속을 다스리고자 읖조린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돌아가는 세상에 새벽이슬처럼 여과된 별빛처럼 삶에 건네주는 순수한 사랑의 의미를 녹여낸다. 책장을 볼 때마다 여러 시집 가운데 자연스럽게 곽재구의 시집에 손이 간다. 남도의 정서가 흘러서?

    시인 황동규 님은 중앙일보 심사평에서 "언어를 다루는 기량과 삶에 대한 끈끈한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적는다.


           沙平驛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중앙일보 / 1981>



          별 생각 없이 펼친 첫 장에 메모가 되어 있었습니다. 책을 구입 할 때면  습관적으로 첫 페이지에 날짜와 간단한 메모를 하다 보니 이런 문구와 조우합니다. 17년전 그날의 장소도 떠오르고 주인공도 떠오르고 추억으로 초대받는 기분입니다. 사촌동생 예준이는 봄이 끝날 무렵 즈음 출산을 앞두고 있고, 서점은 예전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시절이 수상하다보니 얼마전 두껍게 가라앉은 눈 생각도 떠오르고 친구 허소장에게도 전화 넣어야 겠습니다. 이 친구의 졸업작품 주제가 驛舍라는 사실도 새삼스럽게 떠오릅니다. 마음은 가볍게 양손은 무겁게 하고 그의 공간에 발을 내딛을 날을 상상해보니 즐겁습니다. 학창시절의 소중한 을 이룬 그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그의 고향은 화순 사평.그래서 더욱 사평역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寶物倉庫'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간에게 말을 걸다_조재현  (2) 2009.03.26
    건축이란 무엇인가_열화당  (8) 2009.03.23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여행_이용재  (20) 2009.01.21
    오/연/실/당_미미짱  (8) 2008.07.20
    자기발전 노트 50_안상헌  (8) 2008.06.09
Designed by Tistory.